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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TEC Lounge

삶의 여유를 갖게하는 꽃놀이

삶의 여유를 갖게 하는 꽃놀이

 

피는 봄이다. 사람들의 마음도 덩달아 꽃봉오리처럼 붉어진다.

어렵게 피고 쉽게 져버리는 벚꽃은 요즘 낙화의 미학을 보여주며 우리를 떠나가고 하고 있다. 꽃말이 순결`담백 이어서 그런지, 벚꽃 가는 뒷모습이 애잔하다.

 

퇴직을 앞둔 선배 한분은 벚꽃 지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고 했다. 봄이 왔나 싶은데 가려고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우리네 삶과 닮은 구석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형기 시인은 낙화에서,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며 지는 꽃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이형기의 낙화는 머지않아 열매를 향한 희망의 낙화지만, 늙수그레한 직장인 선배는 불안한 미래로 내몰리게 되는 삶에 대한 두려움을 낙화로 떠올렸을 터다.

 

그래도 선배는 기죽지 말자며 떨어지는 꽃잎을 시원하게 보내줬다. “고목에서 새순이 나고 고목에서 꽃도 피는데 아직 충분히 젊다봄날 꽃구경이나 실컷하자고 소탈한 미소를 지었다.

         자료출처 : http://photo.naver.com/view/2005051409170974026

 

 

배의 말처럼 봄은 꽃구경이 제격이고, 아직 차례를 기다리는 꽃들도 많다. 이팝나무도 조팝나무도 복숭아꽃(복사꽃)도 봄날 꽃단장에 한창이다. 이팝나무는 쌀밥에 어원을 두고 있다. 무리지어 피는 꽃 모양새가 그릇에 가득 담겨있는 쌀밥같다. 하얀 밥 덩어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여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팝나무에 꽃이 풍성하면 그해 농사가 풍년이라고 했다.

 

조팝나무는 가지에 다닥다닥 붙은 흰 꽃이 꼭 튀겨놓은 좁쌀같이 생겼다. 밭두렁, 외진경사면 등 척박한 곳을 자기 땅으로 알고 자라는 조팝나무는 사는 장소와 다르게 모습은 화려하고 아릅답다.

 

녹음이 한창 우거지는 5, 순백의 색을 빛내며 계절의 감각을 잃어버리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꽃이다. 한겨울의 눈꽃을 보는 듯 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이 꽃을 원예가들은 설류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료출처 : http://photo.naver.com/view/2008040509162285987

 

덕을 휘감아 돌며 피는 복숭아꽃은 또 어떠한가. 시골 집과 어우러진 복숭아꽃은 아련한 추억을 안겨주는 향수(鄕愁)배달원이다. 나뭇잎보다 연한 홍색의 꽃이 먼저 피는 복숭아꽃은 부귀의 상징으로 통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

 

전놀이는 이제 시작이다. 꽃길은 혼자 걷는 것도 함께 걷는 것도 모두 좋다. 들숨으로 폐부에 차 오른 꽃향기가 날숨이 될 때는 삶의 여유가 돼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 문신 권상신은 남고춘약(南皐春約)’을 통해 꽃놀이 방법을 적고 있다.

보슬비가 오거나, 안개가 짙거나, 바람이 거세도 날을 가리지 않는다. 빗속에 노니는 것은 꽃을 씻어주니 세화역(洗花役)이라 하고, 안개 속에 노니는 것은 꽃에 윤기를 더해주니 윤화역(潤花役)이라 하며, 바람 속에 노니는 것은 꽃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준다 하여 호화역(護花役)이라 한다.’

 

권상신의 말이 아니더라도 꽃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봄은 매년 오지만 올 때마다 색깔이 다르다. 오늘 세상의 꽃들이 만발한 정원을 가슴에 담아 보는 건 어떨까 한다.

 

 

매일신문 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