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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TEC Lounge

세상을 구하는 비누 한 조각

 

 설사. 이 두 음절은 부끄러운 기억을 소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겐 누구나 한번쯤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회자되겠지만, 지구 반대편에서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 만드는 공포스런 대상이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5세 미만의 아이들 중 매일 1000여 명이 설사병으로 생을 마감한다. 유니레버에서는 태어나서 비누를 사용해 보지 못한 사람이 인도에서만 7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미국질병관리센터(CDC)의 집계에 의하면 매년 350만 명의 아이가 설사나 폐렴 같은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한다.

 

 

 이런 이야기를 마주하는 순간의 연민이나 동정의 온도는 금방 식게 마련이다. 그만큼 누구나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특히 당신이 독립된 사무 공간이 보장된 맨해튼 한복판의 으리번쩍한 사무실, 어마무시한 뉴욕의 물가도 가뿐할 만큼 수입을 올리는 부동산중개인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NGO에 가입하거나 큰돈을 기부하는 정도? 이 모든 예상을 깨고 스물다섯 살의 에린 자이키스는 선다라(Sundara)를 만들어 세상을 바꿔 나가고 있다.

 

 

[선다라에서 아이들에게 제공한 위생패킷. 치약, 칫솔, 비누, 물컵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린은 작년 여름 봉사를 떠난 태국의 학교에서 화장실에 비누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처음엔 단순히 비누가 떨어진 줄 알았다. 비누의 행방을 묻는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비누가 뭘까 하는 아이들의 공허한 시선뿐. 화장실을 사용한 후나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는지 묻자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아연실색하며 몇 시간을 걸어가서 비누를 몽땅 쓸어 온 에린은 바로 손씻기 워크숍을 열었다. 선다라의 시작이었다. 이들이 비누를 구매할 여력이없어서 사용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비누 150개를 사는 데 고작 30달러가 들었지만 그보다 훨씬 비싼 담배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애용하고 있었다. 왜 비누를 사용해야 하는지 그 중요성 자체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창업자 에린을 포함한 선다라의 멤버들은 인도, 가나, 아이티에서 위생 교육을 펼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아름다움’을 뜻하는 선다라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모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타인과 나누고 교육을 실천하는가’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설사와 폐렴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개발도상국의 가장 헐벗은 자들을 돕고 위생 교육과 환경 보존, 여권 신장을 위해 일하는 것이 선다라의 미션이다. 현재 선다라는 아이티, 가나, 인도에서 지속 가능한 비누 공급, 손씻기를 비롯한 위생 교육, 수도 같은 사회 기반 시설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선다라에서는 특급 호텔의 욕실에 비치했던 비누를 모아다 사용한 표면을 갈아 내는 작업을 포함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비누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 버려지는 비누를 재활용해 환경을 살릴 뿐만 아니라 빈민가의 여성들을 교육시켜 비누를 재가공하는 일자리를 창출했다. 새로 태어난 비누는 도심에서 몇 시간 떨어진 빈민가와 농촌 지역 학교에 전달된다. 아이들은 워크숍을 통해 비누로 손을 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습관인지, 비누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배우고 있다.


 

 

 선다라에서 손 씻기 교육 못지않게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바로 여성이다.여성들은 선다라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위생 습관을 모니터하고 장려할 뿐만 아니라 건강한 미래를 만드는 일에 누구보다 열정적이며, 그들의 수입은 지역 전체에 도움이 되는 물건을 구입하는 것으로 돌아온다. 개발도상국에서 여성과 아이들의 위치는 사회 구조의 바닥에 머물고 있다. 선다라는 적정한 임금을 제공하는 일자리를 통해 여성들이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정당한 권리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앞장서고 있다.

 

 

 

 

 어벤저스가 도심 상공에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은 최첨단 시대에 아직도 지구 한편에서는 비누 한조각으로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질병 때문에 수많은 생명의 불빛이 꺼져 가고 있다. 비누로 손을 씻는 것은 질병과 감염을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이며 어느 백신이나 약보다 저렴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버려지는 비누를 꼭 필요한 이들에게 선순환시키고, 비누와 손 씻기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자리를 지역의 여성들에게 제공해 사람을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동참하고 싶다면 선다라 홈페이지(sundarafund.org)를 통해 나눔을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후원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습관처럼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줄여서 아이들에게 건강한 미래를 선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의미 있을 뿐이다. 비누로 손을 씻는 것처럼 누군가를 돕는 일도 습관이다.

 

 

 

글 /  정유미

사진 / 선다라(Sundara)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