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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국제시장에 빠진 현대인들

 

 

여든을 바라보는 아버지께서 부르시더니,

혹시 영화 국제시장봤나? 공감가는 게 많아서 그런지, 내가 늙어서 그런지 눈물이 많이나더구나, 시간나면 한번 봐라고 하셨다. 그리곤 얼마 전 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아버지 나 이만하면 잘 살았죠, 근데 진짜 힘들었어요. 내 자식도 언젠가는 나를 찾아와 같은 말을 하겠지요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그 말이 영화에 나오더라며 웃으셨다.

 

 

좀 늦었지만 2월하고도 한참 지나 극장을 찾았다.

피난시절이나 파독광부`간호사, 월남 등은 책과 영화에서만 봐서 그런지 피부에 와 닿지 않았지만,

남북이산가족찾기는 어린시절 부모님과 함께 방송을 보며 한참 울었던 기억이 나 새삼스러웠다.

 

영화 주인공은 전쟁을 겪고, 이산가족이 되고, 찢어진 가난에 허덕이고, 파독광부가 되고, 월남전에서 죽다 살아나고,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이런 과정을 겪은 주인공이 답답한 마음에,

내가 이러고 싶어 이러나, 이게 다 운명이고 팔자니까 이러지라고 외친다. 맞는 말이다.

요즘 같았으면 부모님 손잡고 놀러갈 나이에 구두닦이를 하고, 여자친구와 한가로이 연애나 할 시기에 컴컴한 광산에 들어가 일했으니 국제시장 세대들의 죽지 못해 살았던 삶의 회한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그 세대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요즘 세대들도 사는 게 참으로 팍팍하다.

좋은 대학`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죽을 둥 살 둥 공부하고, 취직해서는 진급`명퇴 걱정, 집 마련 걱정 등에 머리가 아프고, 중년이 되어서는 허접한 노후대책이라도 세워야 하니 허리가 휜다.

우리 세대들도 먹고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한번의 60년이 흐른 뒤 우리 세대들의 이야기가 국제시장같은 감흥을 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전쟁과 피란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이 세상에, 국제시장 같은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남아 있을 리 없을 거고, 그 이야기로 눈물짓는 일은 더더욱 없을 터다.

 

 

한국 전쟁 1세대가 모두 떠날 시간이 임박한 가운데, 우리는 대한민국을 일으킨 그들의 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피란세대라면 누구나 겪었을법한 그저 그런 뻔 한 얘기지만 온 국민이 푹 빠져들었다. 왜 일까. 과거에 대한 그리움, 부모세대의 헌신적인 삶, 그리고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과 각박해진 삶이 '국제시장'을 둘러싼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

 

 

 

 

 

포항에도 국제시장 못지않은 치열한 삶이 펼쳐지는 곳, ‘죽도시장이 있다.

1200여개에 달하는 점포가 자리한 이곳은 포항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이다.
1950
년대 갈대밭 사이로 노점상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자연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거래규모가 크지 않아 북부시장에 밀렸지만 시장은 1968년 형산강변 갈대밭에 포항종합제철소가 창립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이어 1973년 포철이 본격 가동되면서 죽도시장은 규모나 거래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한다.

 

포항의 얼굴 같은 존재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곳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팔고 사는 사람들로 생동감이 넘친다. 주말이면 주차면수 하나 확보하기 힘들 정도로 관광객들이 몰린다. 그만큼 살게 많고 볼게 많다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또 어떠한가. 부산 국제시장처럼 전쟁을 겪은 수많은 덕수 세대들이 밤낮을 잊은 채 열심히 살고 있고, 덕수가 떠난 자리에는 그 자식들이 대를 이어 일을 하고 있다. 덕수 2세들은 아버지가 힘겹게 이뤄놓은 삶을 온 몸으로 기억하며 성실하게 일한다.

 

오늘 국제시장의 덕수를 만나고 싶다면 죽도시장에 한번 나가보자.

그들과 같은 기억을 가진 수많은 덕수들이 우리 아버지가 하고픈 말을 대신해 줄 것이다.

 

 

글. 매일신문 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