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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TEC Lounge

가을 산에 오르며, 나무의 의지를 새겨보자.

가을 산에 오르며, 나무의 의지를 새겨보자.

 

 

 [이미지 출처 : https://flic.kr/p/8Dynpw]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절을 가릴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볼 것 많고 다니기 좋은 시기를 꼽으라면 단연 가을이다. 온통 푸른색만 가득하던 산이 어느덧 형형색색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모양새가 꼭 시집가는 새 색시 얼굴마냥 곱다. 언제 찾아도 산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가 있어서가 아닐까. 나무는 한번 뿌리를 내리면 억지로 옮기지 않은 한 평생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변 환경이 마음에 안 들고 힘들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한 곳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났는데,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나무는 정말 신기하게도 어떤 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뿌리내린 장소에서 살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온통 바위투성이인 산에 가보면 나무의 자생력을 가늠할 수 있다. 햇빛을 받기 위해 몸통을 틀고, 영양분이 부족하면 아랫가지를 바닥으로 내려뜨려 에너지를 비축한다. ‘오로지 살아남겠다’는 투지가 나무의 모양새를 이리저리 뒤틀고 바꿔놓는 것인데, 우리 눈에는 그저 신기하고 아름답게 보일 따름이다. 흔히 뒤에서 날아오는 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앞에서 날아오는 돌은 피할 수 있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나무도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는지 일단 뿌리를 내리면 주변의 환경과 맞선다. 사람처럼 걸을 수도 말할 수도 피할 수도 없지만 숙명을 피할 수 있는 운명처럼 여기며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다. 한곳에 뿌리박고 평생 사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닌데, 몸마저 이리저리 꺾어가며 숙명과 맞서는 용기와 의지가 참으로 대단하다.

 

 

예전에 영국BBC가 1천년 동안 가장 위대한 탐험가 10명을 선정한 적이 있다. 1위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였고, 2위는 타이티-시베리아를 항해한 제임스 쿡, 3위는 달에 첫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 4위는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 5위는 남극 탐험에 큰 발자취를 남긴 어니스트 새클턴 경이다. 새클턴은 무려 3차례나 걸쳐 남극을 탐험하며 위기 속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을 우리에게 남겼다. 새클턴이 남극 탐험대를 모집하면서 낸 광고는 매우 솔직하다.

 

“대단히 위험한 탐험임. 급여는 쥐꼬리만 함. 혹독한 추위와 암흑 같은 세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함. 탐험기간 동안 계속 위험함. 무사귀환 보장 없음. 하지만 성공할 경우 명예와 인정을 받게 될 것임”

 

 

[사진출처 : https://flic.kr/p/7RKUoR]

 


 

무모한 도전을 위해 모인 참가자 5천명 가운데 생물학`지질학`물리학`어부`의사`사진사`조각가 등 다양한 종사자들로 구성된 28명의 탐험대가 여정에 올랐다. 당시 그들의 일기장에는 “얼음에 갇혔다. 여전히 붙들려 있다. 여전히, 여전히, 여전히”라는 단어만 반복돼 있다. 79일간 얼음 속에 갇혀 있었고, 밀려오는 얼음에 배가 부서지면서 표류하고 눈밭을 헤치는 강행군을 이어가는 등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탐험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살기위해 내면에서 절망을 몰아내고 낙관을 심었다. 비록 남극횡단에는 실패했지만 760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사람들은 위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의지에 큰 박수를 보냈다. 그들의 모집광고처럼 위험했고, 목숨도 보장할 수 없었지만 돌아왔을 때는 큰 명예가 그들에게 주어졌다. 죽음이라는 숙명을 운명처럼 이겨낸 그들의 교훈을, 매일같이 온몸으로 보여주는 나무. 올 가을 산에 오르며 나무의 의지를 한번쯤 새겨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글. 매일신문 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