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appy Together

왜 그녀는 꽃을 택했을까...

 꽃이 지는 모습을 보다, 문득 머리에 꽃을 꽂고 실실 웃으며 다니는 여자를 ‘왜 미친년이라고 불렀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진 세상이 싫어서 스스로 화를 달래려 했을까, 아니면 푸시킨의 격언(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처럼 초월적 의미에서 꽃을 택했을까.

 

 

 그녀가 머리에 꽃을 꽂는 이유는 딱히 정의내리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꽃을 무진장 사랑한다는 것이다. 영화에 묘사된 그녀들은 들판에 가득 핀 꽃을 보며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한 아름 꽃을 딴 뒤 제일 큰 놈을 머리에 꽂고 콧노래를 부르며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으레 마을의 못된 남정네들이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그녀를 찾는데, 이상하게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꽃만 다치지 않으면 못된 남정네들의 행동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되레 성욕을 해소한 남정네들이 누가 볼까 급히 옷을 저미며 뛰어나간다. 그녀는 머리에 꽂은 꽃이 다쳤나 살펴본 뒤 아무 일 없다는 듯 꽃이 만발한 들판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영화에서 과장된 면도 있겠지만 사는 것이 힘들고 노여웠던 그녀는 현실을 잊기 위해 꽃에 더욱 집중했을 듯 하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이상의 고통이 밀려올 때 본능적으로 모든 정신적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자신을 보호하려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불행이 찾아올 때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하고 자신에게 위안이 될 대상을 찾아 나선다. 여행, 술, 친구 등에 위안을 찾다보면 어느새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 불행한 현실은 절대 극복할 수 없는 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녀는 아마도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머리에 꽃을 꽂게 됐을 터다. 또 모든 인간의 욕망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꽃을 꽂았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남정네에게 당하는 무력감을 들판에 핀 이름 모를 꽃을 꺾는 분풀이로 대신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가 됐던 그녀에게 꽃은 ‘자유를 만나게 하는 유일한 매개체’ 였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술과 도박, 약물에 찌들려 있다거나, 온라인게임에 몰두해 몇날며칠을 밤새며 일상생활을 못하고 있다면 우리 역시 이미 꽃을 꽂은 것과 별반 다름없다. 다만 그녀는 뭇 남성들에게 당하고 살았지만, 우리는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술, 컴퓨터, 도박, SNS 등 특정한 것에 탐닉한 이들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모습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심심찮게 접하고 있다. 자본가들이 만들어놓은 유혹거리를 이겨내지 못한, 또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이들은 머리에 잠재적으로 꽃을 달고 다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요즘 대형 사건사고로 세상이 침울하다. 그 이면에는 자신의 일을 회피하고 다른 것에 관심을 쏟은, 다시 말해 꽃 꽂는 일에만 정신을 쏟은 이들이 있다. 그들은 그녀처럼 꽃을 꽂고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미리 피하기도 어렵다. 그들 스스로 꽃을 벗어던지는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슬픔을 잊기 위해 꽃을 꽂은 그녀와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꽃 꽂은 이들은 분명 다르다. 전자는 애잔한 슬픔이 전해지지만 후자는 그저 미친놈 일 뿐이다.

 

 

글 / 박승혁 (매일신문 기자)

사진 / 영화 <꽃잎>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