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 언젠가부터 우리사회에서 당연히 지켜야 할 규범처럼 여겨지고 있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각종 미디어를 통해 맹비난이 쏟아진다. 심할 경우 회사자체가 사라질 수 있을 정도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중요한 실천사안이 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 관심을 끈 것은 미국에서 조차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53년 뉴저지 법원의 ‘AP스미스사 재판이 논쟁이 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재봉틀을 만들어 파는 해당 회사가 프린스턴대에 1500달러의 기부금을 내자, 주주 가운데 한 사람이 주주들의 몫을 경영자가 대학에 나눠주면서 주주가 손해를 입었다며 기부금 행위는 무효라고 소송을 냈다. 이에 법원은 기부행위가 직접적인 기업이익과는 상관없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영리목적의 기업은 주주들이 투자수익을 위해 운영돼야 한다는 미국의 경영 가치를 무너뜨린 판결이 나온 셈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adflashblog?Redirect=Log&logNo=220463624586

 

이 판결을 계기로 미국사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됐다. 한편에서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가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한 기업이 최대 수익을 올리는 것이 바로 사회적 책임이라는 목소리를 냈지만, 대세는 윤리적 의무를 담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기업의 이익추구가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지 않아야 하고, 공익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가까운 예로 일류 기업 나이키가 저임금 노동력 착취의 대명사로 지탄받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 생존에 필수요건이자 지켜야 할 의무다. 강요한 책임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 깨닫고 실천해 온 도덕적 행위라는 얘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환경이라면 양측은 서로 상생에 대한 목마름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사실 정부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규제에 나서면, ‘대기업 때리기-쫓기듯 중소기업 상생방안돌출-대기업`중소기업 갈등이라는 공식이 되풀이된다. 이는 대기업의 이익이 중소기업을 착취해서 나온 결과이기에 대기업을 때려 중소기업과 나누게 하자는 포퓰리즘 방식에서 나온 후진적 발상 때문이다. 불공정거래`저가입찰`기술착취 등을 일삼는 나쁜 대기업을 가려내는 대기업 때리기가 안되다보니, ‘대기업=부도덕한 존재라는 이상한(?) 등식이 생겨버렸다. 사실은 많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 상생협력 우수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들에게 부도덕한 존재로 내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상생은 일방적 구애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수평적으로 주고받을 때 상생은 비로소 가치를 더할 수 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독자적 핵심역량을 키우지 못하고 대기업에 목매는 허약체질이 된 것을 과연 대기업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 싸고 더 좋은 것을 찾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그저 그런 기술과 품질로 버티는 중소기업이 수평적 상생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 아니겠는가.

 

포스코가 요즘 어렵다. 포스코에만 목을 맨 기업들은 더 어렵다고 발버둥 친다. 포스코에 너무 목을 매고 상생만 외친 게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한 지역 경제전문가는 포항은 다른 지역 생산에 크게 영향 받는 전형적인 산업구조를 갖고 있어 경제자생력이 매우 약한 지역으로 꼽힌다. 그래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포스코와 철강에 전력투구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철강과 연관효과가 높은 산업으로의 확대와 스스로의 체질개선 및 경쟁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더 이상 상생을 말할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의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매일신문 박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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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플랜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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