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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ogether

꽃차와 약초 통해 세상을 보다 (초빈 산방 조아경 씨)

묵고 사는기 바빠가 그냥 내삐 왔지만

두고 온 젊은 날에게 니 사랑한데이,

소리 쳐 보아도 냄새스럽지 않은 곳.

 

외롭다,

외롭다 사는게 천날 만날 와, 이 꼬라지고

누구라도 좋데이 지발/가슴 속 야그나 좀 하자요

햇살 좋은 수다를 떨어도 되는 그 곳.

에이씨

지랄 염병 같은 시상

잘 묵고 잘 살아라

응어리 하나쯤 느끈하게 녹여 내는

그 곳.

 

늙수레한 주인 여자가 우려내는

쑥부쟁이.

 

 

이 시를 지은 늙수레한 주인 여자를 만나러 포항시 장기면 산서리 초빈 산방을 찾았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이곳은 7개월만에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우수체험공간지정서를 받았다. 전국에서 5곳 밖에 없는 귀한 곳이지만 사람들에게는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주인 조아경(50)씨는 만나자마자 걸쭉한 사투리로 반갑게 맞았다.

 

온다고 고생했심다. 늙은 여자 조용히 사는 곳 뭐 볼게 있다고 여까지 왔능교. 그래도 여기 좋은 게 많으니까 소개하면 사람들한테 잘 댕겨왔네라는 소리는 들을 거시더

 

조씨는 독학을 통해 꽃차를 만들고, 약초장아찌를 담는다. 물론 술 담는 실력도 대단하다.

 

무엇을 먼저 소개해야 할지 어려울 정도로 그의 재주는 다재다능하다. 이미 시인으로 등단했고, 대학에서 강의도 열심히 하고 있고, 음식 만드는 데도 탁월하다.

 

그의 재능을 손꼽으며 고민에 빠지자,

보이는 것부터 하시더라며 환하게 웃는 조씨.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다양한 꽃차에 대해 묻자, 직접 산을 뒤지고 다니며 채취하고 덖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차 덖는 거 진짜 어렵심더. 요 단풍잎을 370도에 맞춰 9번을 덖어야 하는데 그 정성이, 아니 한마디로 마시기 아까울 정도라 안 캅니꺼. 성질 더러운 놈은 차 덖다가 숨 넘어 갈낍니더

 

차 이름도 찬찬히 보면 그의 해학이 잘 묻어나 있다.

 

여기는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니더. 특히 남편한테 자식한테 시달려 가슴이 답답해 달려오는 엄마들이 많다 아입니까. 그래서 차도 화기를 누르는데 좋은 꽃잎을 모아 만들었고 이름도 그래 지었심더. ‘잘 묵고 잘 살아라, 이년저년차등이 바로 그건데 읽기만 해도 웃음이 난다 아입니꺼

 

 

 

그의 꽃차 사랑은 언제부터일까?

 

20대 그는 암벽등반에 빠져 전국의 산이란 산은 모두 돌아다녔다. 대학시절 돌도 조금 던져보고, 정부 욕도 조금 해보고, 그러다 보니 세상이 싫어 산에 빠지게 됐고, 이것이 꽃과 약초와의 인연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경남 밀양에서 암벽등반을 하다 동료 7명을 잃고 자신 역시 큰 부상을 당하자, 어쩔 수 없이 산을 떠나게 됐다. 다시 세상에 돌아온 그는, 수학과외 등을 하며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세상사가 다 그렇듯, 또 하나의 고난이 그를 기다렸다. 둘째 딸이 심각한 아토피로 몸살을 앓았다. 이때부터 그는 젊은 시절 공부했던 꽃차와 약초로 아이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7년에 걸쳐 둘째 아이의 병을 낫게 하고는, 그때부터 꽃차에 빠져 살게 됐다고 한다.

 

 

 

그는 꽃과 약초재배를 위해 5700평이 넘는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요즘은 이곳에 산책로를 만들어 세상에 지친 이들에게 내어주려 하고 있다. 이곳 땅은 지금 겨울이라 황량하지만 그 속에는 다양한 약초들이 움트고 있다.

 

요즘은 술 담그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한다.

 

연엽량이란 거 아닝교. 이거 정말 운치 있는 술인데, 특히 여자 꼬실 때 최고라 안갑니꺼. 연꽃에 싸 발효해 만드는데, 꼭 생긴 게 주먹밥 같니더. 요걸 들고 다니다가 물에 풀어내면 최고의 술이 나오는데 맛도 좋지만, 정말 운치있심더. 한번 해보실랍니까

 

조씨는 올해 한국꽃차협회 이사가 된다. 그의 실력을 본 협회에서 맡아달라고 부탁한 자리다. 또 외국인들을 위해 한국인의 밥상차리기 문화행사도 이어갈 계획이다. 그의 음식철학도 사람들에게 알릴 계획이다.

 

여기를 감동이 있는 곳으로 만들 요량이니더. 선현들의 멋을 담은 이곳에 놀러 한 번 와 보이소. 내가 멋이 뭔지 지대로 보여줄낍니더. 꼭 한번 놀러오이소

 

조씨는 산방을 대학제자들이 정말 촌스럽게지었다며 편하게 놀러오라는 말을 다시한번 잊지 않았다.

 

 

<글/사진 : 박승혁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