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군 강구면 강구항. 요즘 대게잡이(12월~5월)가 한창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어르신이 대게통발을 항으로 힘겹게 끌어올리고 있다. 숨이 찼던지 간간히 바닥에 통발을 내려놓고 배 가장자리에 앉아 숨을 돌린다. “고단하지만 배타면서 애들 키우고, 이만큼 살았다. 바다는 나에게 하늘같은 존재다”며 말문을 여는 선장 김통천(64)씨. 몸이 아파 병원 신세를 질 때도 간혹 있지만 금세 바다로 돌아온다. 바닷바람을 쐬야 병이 나을 것 같기 때문이란다.
선장은 작은 배에 몸을 싣지만, 그 배는 그에게 육지이자 작은 우주다. 그 공간에서 선장은 파도와 바람으로 일상을 빚고, 그물을 타고 올라온 놈들로 삶을 꾸리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고독과 고립의 공간, 바다에서 거역할 수 없는 사나운 바다와 거친 바람이라는 숙명을 온몸으로 맞서는 질긴 일상이 김 선장의 삶이다. 평생을 바다에 기대온 삶이기에, 겨울볕을 벗 삼아 바다로 나가는 선장을 보면 마치 인생을 갈무리하는 철학자 같다.
뱃일은 내 운명
김 선장은 16살 때부터 어부인 아버지를 따라 바다에 나갔다. 청소년기부터 그의 삶은 고기잡이를 제외하고는 어떤 추억의 편린도 없다고 했다. 청년이 된 그는 부산영도에 있는 상선회사 선원으로 취직해 원양어선을 탔다. 오대양 육대주를 누빈지 10여년 만에 기관장으로 승진한 그는 갑자기 고향이 그리웠다. 마흔이 넘어 부모님이 물려주신 ‘대흥호’ 선장이 된 그는 고향바다를 누비며 물고기를 잡았다.
요즘은 배타는 것이 힘에 부치는데다 어획량도 많지 않아 가족과 함께 횟집도 운영하고 있다. 아내 이영희(59)씨는 “가족을 위해 바다를 힘겹게 누비면서도 늘 행복해하는 남편이 자랑스럽다”며“남편이 뱃일을 그만두는 그날까지 건강했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다.”고 말했다.
김 선장의 하루
김 선장은 연안자망어선을 탄다. 주로 대게 조업에 나서는데, 어자원이 크게 줄면서 수입이 변변찮다. 그래서 경매사들에게 넘기는 대신, 직접 횟집을 운영해 생계를 유지한다.
김 선장은 지난해부터 기름값이 많이 올라 2~3일에 한번 조업에 나선다. 게다가 한국인 작업자를 구하기 어려워 외국인 작업자와 함께 바다에 나가는데, 말이 잘 통하지 않아 곤란을 겪을 때가 많다고 한다.
“몇 해 전 대게잡이 조업 중 갑자기 만난 풍랑으로 배가 뒤집힐 뻔 했어요. 그때 외국인 선원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큰 일을 당할 뻔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데요. ‘목숨을 걸고 왜 이일을 하나’라는 생각. 그래도 이내 ‘우짜겠노, 이게 내 삶인데, 더 열심히 하자’라며,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다에 나가게 됩니다.”
김 선장은 요즘 조업에 나가면 십중팔구 적자를 보고 돌아온다. 선원 1인당 20만원의 인건비와 기름값, 어구값 등을 제하면 바다에 나가지 않는 것이 되레 낫다. 그래서 그는 바다에서 본 적자를 횟집을 통해 메운다고 했다.
김 선장의 로망
김 선장의 로망은 ‘만선(滿船)’이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고기를 가득 싣고 귀항하는 만선의 기억이 그의 뇌리에 크게 자리하고 있기에 뱃일을 멈출 수가 없다. “만선을 알리는 깃발을 달고 부두로 귀환 할 때 그 기분 아무도 모릅니다. 그동안 겪었던 공포감, 고된 작업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는 없습니다. 항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가, 목에 힘주고 배에서 내리는 나를 반기며 막걸리 한잔을 내어주는데, 그 기분 정말 최곱니다. 그 맛에 배타는 것 아닙니까”김 선장은 오늘도 어김없이 바다로 나갈 채비에 분주하다. 만선의 로망 때문인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만선이 아니라도 좋아요. 내 가슴속에 고기를 가득 실은 배가 떠있는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오늘도 무사히 고기잡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지요”
김 선장은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물때로 얼룩진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아직 건장하다”며 발팔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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