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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ogether

남도 칼국수 집, 정경해 씨

직접 다듬고 만든 노력의 결과물이 음식

 

예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조금 힘에 부치는 나이다. 게다가 평생 주부로 살아온 경우라면 더 힘들다.

 

 

포항 오거리 해장국 골목 한 켠에 자리한 남도칼국수 주인 정경해(64). 예순에 장사를 시작했다. 사업을 하던 남편이 병으로 쓰러지면서 먹고살기 위해가게를 차렸다. 정씨는 음식 솜씨만 믿고 칼국수 가게를 열었지만, 사회생활 경험이 없던 터라 처음은 쉽지 않았다. 손님 없이 가게를 지키는 날이 많아, ‘그만둘까라는 생각이 들 무렵, 수녀인 큰 언니가 도움을 줬다.

 

대전에 맛있는 칼국수 집이 있는데 한번 와보라라는 언니의 권유에, 그는 망설임 없이 대전행을 택했다. 그리고는 그 집에서 일을 배우며 자신만의 노하우가 가미된 맛을 만들었다. 지금의 남도칼국수라는 이름도, 대전에 있는 칼국수집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정씨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는 우리집 소개 하지 마이소라며 손사래부터 쳤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얘기였지만, 처음 그런 얘길 들었을 때, 속으로는 진짜 맛있는 거 맞나. 조미료로 대충 입맛 사로잡은 그렇고 그런 맛이겠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줌마, 그렇게 소개하기 싫으면 하지마소라며 칼국수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는데, 웬걸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기도 전에 사장님소리가 절로 나온다.

 

사장님 이거 소개해야 합니다. 진짜 맛있네. 이게 바로 맛집 아입니꺼라고 하니, 그제야 사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주인은 음식 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손님들 역시 해물에서 우러나온 깔끔한 국물 맛이 끝내준다고 입을 모은다. 가끔 감칠맛이 부족하다는 맛 비판이 나오는데, 이는 조미료를 쓰지 않는 주인 고집 때문이다.

 

 

이 집 칼국수 국물은 게, 미더덕, 홍합, 멸치, 다시마, 양파 등 천연재료로만 만들어진다. 기본기가 확실하다보니, 국물을 남기는 손님이 거의 없다. 칼국수의 또 다른 맛 요소인 면발은 정씨의 남편 정성이 그대로 스며있다. 병으로 사업을 접은 뒤, 아내 일을 거들기 시작한 남편은 요즘 최고의 면발 기술자가 됐다. 그가 뽑아낸 적당히 굵고 쫄깃한 면발은 사람들의 입맛을 쉬이 사로잡는다. 홍두깨로 정성껏 밀어낸 남편 솜씨가 아내 국물과 제대로 어울리고 있는 셈이다.

 

정씨에게 맛의 비법을 묻자 조금 허탈했다.

 

정성과 정직’. “그러지 말고 좀 알려 주이소라고 했더니, “멸치육수 기본으로 쓰고, 아침에 죽도시장가서 싱싱한 해물 집어넣으면 되는데 비법이라고 할 게 뭐가 있냐라며 웃었다.

 

 

을 잡아보고 싶어, 다른 음식을 맛보여달라고 했다. 추어탕과 비빔밥이 나왔는데, ‘남도추어탕, 남도비빔밥이라고 음식점 이름을 바꿔 불러도 좋을 만큼 맛이 훌륭했다.

추어탕은 국내산 미꾸라지를 구해 직접 채에 걸러낸다. 엄마 손맛 그대로다. 비빔밥은 미역, 도라지, , 당근, 버섯, 도라지 등 9가지의 푸성귀로 만들어낸다. ‘살아있는 맛을 내기 위해 푸성귀는 하루 쓸 만큼의 양만 구매하기 때문에, 조금 일찍 가야 비빔맛을 맛볼 수 있다는게 흠이라면 흠이다.

 

직접 다듬고 만든 노력의 결과물이 음식이라고 정의하는 정씨. 그래서인지 눈에 잘 띠지 않는 골목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정씨는 나이 때문에 시작은 어려웠지만, 나이 때문에 과정을 더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나이가 새로운 도전을 막은 장애였다고 하면서도, 나이라는 내공이 있어 음식점을 잘 운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씨는 남편과 건강하게 살면서 맛있는 요리로 포항사람들 입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사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글/사진 : 박승혁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