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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ogether

조청 만드는 비경 속 仙人, 이원복 씨!

고요 속 비경이 살아있는 곳, 울진 왕피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내려 왔다고 해 왕피천(王避川)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지금도 왕피천 일대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몇 안 되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계곡을 지나야 하고, 산을 올라야 하며 오솔길을 한참이나 걸어야 한다. 거북이를 닮은 거북바위, 울진의 대표특산물 송이를 옮겨놓은 듯한 송이바위 등 볼거리가 많아 걷기에 지루하진 않다.

이렇게 굽이치고 깊은 길 속에 누가 살까 싶지만, 분명 속세와는 조금 다른 삶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웅장한 금강소나무의 자태에 흠뻑 빠져 카메라를 메고 이곳에 안착한 사람도 있고, 예술혼을 살리기 위해 작업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다.

이원복(55)씨 역시 왕피천이 좋아 이곳에 안착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기위해 들어 왔는데, 요즘에는 어린 시절 집안에서 배운 조청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이 씨는 원래 불화(佛畵) 전문가다. 불화를 그리며 부산에서 유명세를 얻기도 했는데, 이곳에 들어와 직업이 바뀌어 버렸다.

 “마지막 작업이 경남 고성에 있는 달마선원의 불화입니다. 8m 크기인데, 6개월이 걸렸지요. 아시다시피 불화 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듭니다. 저 역시 불화를 그리는데 들어갈 붓이나 물감 등의 비용부담 때문에 고민이 많았지요. 그때마다 조청을 만들어 불화 그리는 비용을 충당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불화 그리는 솜씨보다 조청 만드는 솜씨가 날이 갈수록 더 좋아지는 거예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가장 잘하는 거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조청을 아예 업으로 삼아버렸어요”

불화를 그리기 위해 만든 조청이 입소문을 타면서 삽시간에 전국 유명 백화점까지 납품 영역을 넓혔다는 것. 그는 백화점 납품을 계기로, ‘왕비천 하늘조청’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본격 조청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왕피’라는 어감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왕비’라고 썼고,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든다는 의미에서 ‘하늘’이라는 이름을 넣어 상호명을 지었다고 했다.

이씨는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를 고집하기에, 사용하는 재료가 모두 무농약 농작물이다. 내친김에 집 근처 3천300㎡의 밭을 개간해 도라지를 직접 심었다. 말이 3,300㎡지, 3년마다 도라지를 옮겨 심어야 하는 노고를 생각하면 일이 만만치 않다.

조청 만드는 작업은 또 어떠한가.

가마솥 앞에 앉아 참나무 장작을 떼며 꼬박 이틀은 붙어 있어야 한다. 이 씨의 명품 조청을 만드는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았다.

수수를 하루 전에 물에 담가 둔다. 새벽 4시, 전날 물에 불린 수수를 찜통에 찌고 도라지와 무 등은 물에 6시간 끓여낸다. 이렇게 우려낸 물에 수수와 엿기름을 넣어 다시 12시간 이상을 삭힌다. 발효 물을 끓이는 작업인데, 불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음날이면 숙성된 조청을 다시 가마솥에 넣어 8시간 가까이 졸인다. 저녁 무렵이 되면 이틀간의 긴 과정을 거쳐 달콤한 조청이 나오는데, 그 양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월 생산량이 아무리 많아도 500kg은 넘지 않는다고 하니, 들어가는 수고가 무색할 정도다.

 이처럼 오랜 시간을 들여 적은 양의 생산물을 만들어내지만, 이 씨는 오히려 기다림이 좋고 넘치지 않아서 행복하다고 한다. 욕심이 날 법도 한데, 본인이 만들 수 있는 양만 만들어 판매한다. 그저 먹고 살 정도면 족하다는 게 이 씨의 생각이다.

이 씨는 조청을 만들 때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

바로 ‘주변에서 나는 재료로 직접 만든다.’는 것. 그는 조청을 만들 재료를 구하기 위해 인근 농가들과 계약재배 방식으로 농산물을 받는다. 농가들에게 받은 재료로 만든 그의 제품은 수수도라지조청, 수수조릿대조청, 수수마늘조청, 수수당귀조청, 찹쌀조청, 보리조정 등 6가지다. 최근에는 청와대 맛 시음에 소개돼 인기를 얻기도 했다.

요즘 이 씨의 고민은 제품생산량을 늘여달라는 거래처의 부탁. 하지만 이 씨는 이를 거절할 생각이다.

“조청은 천천히 만드는 음식입니다. 천천히 만들어야 할 음식을 빨리 만든다면 부작용이 생길 거예요. 몸을 빨리 치유하기 위해 항생제를 먹으면, 부작용이 찾아오듯 느린 음식은 느리게 먹어야 합니다.”

 이 씨는 왕피천의 깊은 골을 찾아왔다면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진한 조청 맛도 한번 보고 갈 것을 권했다.

글: 박승혁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