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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ogether

고래잡이에서 고래사랑으로, 김정환

일본 중남부 태평양 연안에 자리한 와카야마현 타이지 마을.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바다 쪽은 절벽으로 막혔고, 주변은 날카로운 철조망으로 둘러쳐 있다. 외부인들의 접근을 철저히 막고 있는 것인데, 실상은 돌고래 사냥을 보여주지 않기 위함이다. 어부들은 돌고래 떼를 구석으로 몰아넣은 뒤 작살로 찍어 올린다. 수 십 마리의 돌고래는 힘겹게 발버둥 치다 금세 물위로 몸을 떠올린다. 영화 더 코브의 한 장면이다.

 

 

 

영화라고는 하지만 실제 돌고래 보호운동가들이 촬영전문가들과 7년을 함께 하며 만든 다큐멘터리다. 다행히 다큐의 주인공이던 돌고래 무리 가운데 암수 두쌍은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으로 자리를 옮겨 아이들에게 재롱을 부리며 지내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가 과학적 목적에 한해 고래잡이를 허용하겠다고 국제포경위원회에 밝히면서 환경단체와 국제포경위 회원국들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여론도 여러 갈래 나눠져 있다. 고래를 잡으면 나라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걱정하는 시각도 있고, 마릿수 증가로 오징어 등 다른 어종에 피해를 많아 일정 부분 포경을 찬성하는 시각도 있다.

 

포경을 둘러싼 찬반 논란에 대해, 우리나라의 마지막 포경선 선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의 삶을 통해 고래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정환(63). 그는 1986년 포경이 금지되기 전까지 포항과 울산에서 17년 동안 고래잡이를 했다. 20살 선원에서 시작해 선장까지 올랐으니, 그의 실력을 짐작할 만 했다. 그는 포경이 금지된 요즘 포항 구룡포에서 작은 통발어선을 타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고래잡이 시절에 묻자, 그는 돈은 벌렸지만 마음은 힘들 때가 많았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는 서해와 독도, 대마도 인근을 다니며 밍크고래와 혹등고래 등을 잡아 올렸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귀신고래도 종종 잡았다고 했다.

 

최근 돌고래 포획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있다고 하자, 일단 그는 용어 정리부터 했다.

포경선원들이 말하는 돌고래는 우리가 동물원에서 보는 것과 달라요. 보통 혹동고래나 귀신고래를 보고 돌고래라고 하는데, 아마도 등에 따개비가 돌처럼 붙어있다고 해 이름 붙여진 것 같아요. 사실 돌고래는 등이 곱추처럼 굽었다 해서 곱시기라고 불러요. 생긴 모습에 따라 참곱시기, 문디곱시기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기도 하죠

 

김씨는 젊은 시절 고래잡이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우선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고래는 어군탐지기에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고래잡이 선원들의 조건 1순위는 시력. 망대에 올라 오로지 눈 하나에 의존해 고래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한 마리만 봤다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포경조업이 시작된다. 고래는 동료애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위기가 닥치더라도 홀로 도망가지 않는다. 한 마리만 발견하면 여러 마리의 고래를 손쉽게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 역시 과거 고래를 잡을 때 그들이 가진 따뜻한 모성애와 동료애 때문에 작살 총 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인터뷰 초반, 고래잡이 시절에 대해 마음이 무거웠다고 소회를 밝힌 듯 했다.

오래 전 고래 포경이 금지된 것은 줄어드는 고래 개체수를 보호할 필요 때문이죠. 요즘 어민들에게 들어보니 예전과는 또 반대 상황이라고 하네요. 돌고래 숫자가 급격히 늘면서 오징어나 청어 등의 조업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하니, 그에 따른 개체수 조절 정도의 포획은 가능하다고 봐요

김씨는 고래 포획은 개체수 조절 정도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인간의 욕심이 바다생태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선을 언제나 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는 고래포획이 무분별하게 이뤄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 고래를 관광자원화 하는 마을이 외국에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도 그렇게 한다면, 고래포획을 두고 찬반 논란이 일지 않겠지요

고래잡이 김정환은, 어느덧 고래사랑 김정환으로 변해있었다.

 

 

글 : 박승혁/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