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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ogether

발 넓고 인심 좋은 김소명 사장

포항시 남구 대이동에 자리한 선술집, 미찌꼬.

 

늦은 밤까지 사람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여느 선술집이나 다름없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에 소개된 80년대 선술집에서 먹었던 참새머리와 아낙의 술 따르는 신공까지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곳은 너무 평범하다. 그런데 웬걸, 손님들이 앉은 테이블 가까이 가니 이야기가 달라진다.

 

 

발 넓고 인심 좋은주인이라는 평가답게, 테이블마다 안주가 가득하다. 돈 주고 시킨 것 보다 주인이 맛보라고 준 게 더 많다.

후배가 낚시 갔다가 잡은 게르치인데, 한번 드셔보이소. 요건 자연산 홍합인데, 이거 구한다고 아침부터 해녀들 찾아 다녔습니다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서비스 안주를 내놓는 주인, 김소명(46)씨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가게 운영이 적자라고 하면서도 웃는다.

오징어 등 그날 들어온 해물이 다 팔리지 않으면 요리해서 주변 이웃들과 나눈다. 또 적자가 예상되지만 그는 웃는다.

 

 

한쪽 테이블에서 김치찌개주문이 들어오자, 그는 재빨리 주방으로 들어간다. 돼지고기를 듬뿍 썰어놓은 찌개를 한가득 내놓으며, 고래찌개를 덤으로 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표현이 딱이다.

 

주인은 적자에도 웃고 있는데, 오지랖 넓은 걱정에 조금 덜 주면 흑자도 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돈 벌라고 가게 차린 건 아닙니다. 실은 제가 요리하는 걸 엄청 좋아합니다. 단골 손님들이 오셔서 음식 드시는 걸 보고 있으면 자꾸 드리고 싶어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많이 나누면 좋잖아요

 

 

그래도 가게를 아끼는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퍼주는 것을 걱정하며 그러다가 가게 문을 닫으면 우린 어데가노. 적당이 좀 하이소라고 싫지 않은 핀잔을 준다.

그가 뭘 믿고 그렇게 퍼주나 싶어 조심스레 물어봤더니, 역시나 직업이 두 개다.

낮에는 그는 어엿한 건축디자인 사무실 사장이다. 설계도면도 그리고, 건물도 짓고 밤이 돼 가게를 찾을 때까지 그의 무대는 건설현장이다. 특히 실내인테리어는 그의 음식솜씨만큼이나 맛깔 난다. 세심한 손길 덕분에 고객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꽤 알렸다.

 

이른 아침부터 온 종일 현장을 뛰어다니면 녹초가 될 법도 한데, 굳이 밤까지 일을 하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음식 만들기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서 한다고 했다.

 

요즘은 메뉴마다 고유의 맛을 최대한 잘 낼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고 하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특히 전통방식으로 양념장을 만드는 방법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음식을 만들다보면, ‘참 쉬운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미세한 차이에도 맛이 확 달라지는 음식의 정직함을 보면서 세상일도 이렇지 않나 싶어요. 요즘 제가 음식 만들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그가 어떻게 주방을 진두지휘 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주변에서 음식점을 하는 주인들과 친하게 지내는데 있었다. 그들과 교류하며 고유한 음식 노하우를 하나씩 익힌 것인데, 그 방법 또한 재밌다. 일단 칼국수, 일식, 중국음식 등 다양한 분야의 음식을 만드는 사장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품평을 듣는다. 그리고는 개인적으로 만나 맛을 개선시킬 방법을 묻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손님 식탁에 올릴 음식을 완성해낸다.

 

대부분 해당분야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듣는 이들이기에, 음식 맛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정확히 짚어준다. 그 덕에 그의 음식솜씨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아직도 최소한의 재료로 최고의 맛을 내는 내공을 가진 음식점 주인들을 보면 한없이 부럽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정말 모르겠어요.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데 맛이 다른 것을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요. 아마도 부족한 내공 탓이라 보고, 내공쌓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탄탄하게 다져질 내공 아래 탄생할 이 남자의 요리가 궁금해진다.

 

글/사진 : 박승혁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