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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ogether

포항의 산 사나이

17살, 암벽 타는 사내가 멋있어 산악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40년을 산과 함께 살았다. 올해 58살, 이제 지칠 법도 하건만, 도대체 멈출 기미가 없다. 1년에 100일 이상은 산을 찾아야 직성이 풀린다.

포항의 산 사나이 홍기건(58)씨. 그는 지난해 퇴직하면서 속으로 ‘씨익’ 웃었다. 이제야 제대로 산을 다닐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퇴직과 동시에 그는 아내에게 1천만원을 얻어 네팔로 떠났다.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에 자리한 베이스캠프까지 올랐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그는 행복했다.

그의 행복한 도전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2000년, 낭가파르바트(8천126m)를 정복했다. 12년을 준비하고 꿈꾼 도전이었기에 값졌다.

“당시 셀파가 없어 산허리에서 길잡이 역할을 했습니다. 동료들이 제 말 한마디에 생사가 갈릴 수 있다는 생각에 목

숨 걸고 안내했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의지와 집념이 있으니 기적은 이뤄지더라고요.”

홍씨는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며 행복해 했다. 산을 예찬할 때는 선한 눈빛을, 산에서 죽어간 동료를 떠올릴 때는 금세라도 눈물을 쏟을 듯 했다.

산과 함께 해서일까? 동안이다. 탄탄한 몸에 서글서글한 눈빛이 환갑을 앞둔 나이 같지 않았다.

“동안은 무슨, 건강관리요? 그냥 아프지 않을 만큼만 운동합니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다보니 부상은 달고 삽니다. 지난해 인대파열로 고생하다보니 요즘 산보하는 수준으로 산을 다니고 있는데, 자꾸 욕심나는 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홍씨는 산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실천으로 다녔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2008년 이전까지 그렇게 열심히 산을 다녔건만 사진하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산에 가면 열심히 찍고 기록한다. 특히 내연산에 깊은 애정을 쏟고 있다. 관광안내판만 덩그러니 있는 내연산에 등산안내판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다. 그래서 올해 열심히 기록해 내년에 포항시를 통해 정식으로 등산안내판 제작을 요청할 계획이다.

“내연산 ‘삼지봉’이라는 명칭은 제가 붙였습니다. 내연산 곳곳에 자리한 골짜기 이름을 알기 위해 화전민을 모시고 산을 수차례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내연산의 아름다운 명칭을 널리 알리고 싶어 묵묵히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홍씨는 내연산 등산안내판 작업이 끝나면 포항지역 주변의 산에 대한 간단한 책자를 만들 계획이다. 그가 강의하고 있는 포항등산학교 개교 2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평소 지역에 자리한 산을 사랑하는 마음의 발현이기도 하다.

1주일에 4~5번은 산에 오르는 홍씨의 건강비법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여러 가지 다른 운동이다. 산에서 쌓인 피로는 수영으로, 스킨스쿠버로, 스키로,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킨다.

산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다보니 가족이 문제다. 결혼 전에 내건 “산을 다녀야 한다.” 는 조건을 두고, 아내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고칠 생각이 없다. 오히려 퇴직이후 더욱 신나서 산에 다니는 남편이 다치지만 않았으면 하는 것이 아내의 바람이다.

그래도 홍씨는 가족들에게 언제나 ‘두려움을 모르고 도전하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올 연말 아내를 데리고 유럽 트레킹을 갈 예정입니다. 아니 가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산에 미칠 수 있었던 것이 아내가 묵묵히 내조해주었기 때문인 거 같아요. 그거 갚으러 떠나는데, 유럽에 자리한 멋진 산들이 저를 유혹하면 또다시 아내를 조금 실망시켜야 할 것 같아요.”

홍씨는 앞으로 거친 도전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나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죽는 날까지 탐험과 도전은 멈추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에게 산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이자, 직장이자, 인생이기 때문이다.

 글: 박승혁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