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이 안 보인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고교시절 권투부에서 복서로 이름을 날릴 때만 해도 거칠 것이 없었다. 도민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며 챔피언의 꿈을 키워가던 스무 살의 여름, 난 점점 세상의 빛이 옅어져간다는 것을 느꼈다. 병원에서 희귀병 ‘베체트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의 말이 귀에 채 와 닿기도 전, 난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렸다.
“하느님, 왜 하필 접니까?”, 원망과 분노를 쏟아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며 지내기를 6년. 아무런 희망과 꿈도 없었다.
“‘죽고 싶다, 지금이라도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들던 시절이었어요.”
김일근(44)씨는 추억을 되 뇌이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병원에서 동공주변에 염증이 생겨 앞을 볼 수 없다고 하더군요. 사망각서까지 쓰고 항생제를 투여했는데, 자그마치 6년이나 약을 먹었어요. 그때는 걷기도 힘들어 집안에서만 시간을 보냈어요.”
김씨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낄 즈음, 아내를 만났다. 1992년, 그는 가정을 꾸미면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포항시 북구 장성동에 있던 부모님 집 2층을 음식점으로 단장하고, 가장으로서 첫 출발은 선언한 김씨.
“아내에게 든든한 가장이 되고 싶었는데, 돈이 너무 없었어요. 그래서 공사도 제 손으로 직접 했습니다. 살아야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했었죠. 하하”
김씨는 젊은 시절 못 다했던 운동이 그리웠다. 권투는 눈이 보이지 않아 불가능했고, 결국 감각으로 할 수 있는 유도를 택했다. 타고난 체력은 유도에서도 금세 빛을 발했다.
1996년 ‘장애인 전국체전’, ‘애틀랜타 장애인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해 동메달을 땄다. 1998년에는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2002년에는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김씨가 세상에 대한 편견을 업어치기 한판으로 이기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아직도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시각장애인 축구대회 포항지역 대표선수로 변신해 잔디밭을 누비고 있다. 또 제자를 기르는 일에도 열심이다. 2010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유도부문에 제자를 이끌고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 단체전 우승을 일궈냈다.
“가르치는 것의 보람, 운동을 하면서 장애를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 이것만으로도 전 행복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장애를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아 지레 겁먹고 몸을 숙였는데, 막상 해보니 극복이 됩디다. 세상은 맘먹기에 달렸고 행동하기에 바뀌는 것 같습니다. 하하”
이제 알 듯 했다. 저 웃음. 해맑게 웃는 김씨에게 도통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꿈을 꾸고, 꿈을 이루는 김씨에게 장애는 정말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 둘, 복싱 챔피언 환경미화원 김범수 씨“쓱싹쓱싹” 새벽거리에 힘찬 빗자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몸에 붙은 야광등이 그의 동선을 따라 다니며 좌우로 움직였다. 새벽바람이 제법 매서웠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빗질을 이어갔다. 동이 터 오르기 시작하자, 그는 일손을 멈췄다. 굵은 땀방울이 얼굴에 배어났다.
경주시 환경미화원 김범수
(42)씨. 악수를 청하자, 묵직한 손이 감겨들어왔다. “챔피언이시죠”라고 조심스럽게 묻자, “아니 뭘”이라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김씨는 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에서 챔피언을 먹었다.
2008년 5월 경주시청 환경미화원으로 취직한 그는 매일 체육관을 찾아 복싱을 연마해 전국 아마추어 최고 주먹에 올랐다.
“제가 쓸고 닦는 일 하는 사람 아닙니까. 그래서 링에 올라서도 다 쓸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가 웃으며 농을 던졌지만, 사실 복싱을 시작하기 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또 복싱 때문에 세상을 살아갈 힘도 얻었다.
그는 경남 진해에서 해군 부사관으로 복무하며 제법 돈을 모았다. 전역 이후 화장품 도매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쉽지 않았다. 밤낮으로 일했지만 결국 빚만 수억 원을 떠안고 일을 접어야 했다. 부도 이후 술만 마시며 살았다.
“하사관 시절, 꿈 많고 건강했던 제가 너무나 그립더군요. 자꾸 과거만 쫓으려다 보니 술만 마시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잊고 있었던 게 하나 있었어요. 내 딸, 이 녀석이 있었지 뭡니까.”
2006년, 어린 딸의 눈망울에 이끌려 환경미화원에 지원했던 김씨. 몇 년 째 술에 찌들어 살았던 그가 환경미화원 체력검증시험을 통과할 재간은 없었다. 결국 탈락. 2007년 재수했지만 결과는 또 탈락. 김씨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어린 딸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체력 키우기.
“환경미화원 체력검증에서 연거푸 떨어지니, 참 어이가 없더군요. 사수는 하지 말자는 생각에 권투도장 문을 두드렸습니다. 세포 속까지 파고든 술 찌꺼기를 쏟아내기 위해 죽도록 뛰고 주먹을 날렸습니다. 체력은 점차 회복됐고, 하사관 시절의 몸처럼 탄탄해졌습니다.”
2008년 드디어 김씨는 합격증을 손에 쥐었다. 일하는 만큼, 체육관에서 운동도 열심히 했다. 금융기관에서 “10년은 벌어야 갚을 수 있다”고 했던 빚도, 어느덧 90%나 갚았다.
빚을 갚아가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의 주먹도 강건해졌다. 지난해 KBI전국생활체육대회 40대 부문에서 챔피언에 올랐다. 이제는 방어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동안 그가 링의 맹주가 될 전망이라고 동료들은 입을 모은다.
“퇴직할 때까지 열심히 돈을 모아 나중에 권투체육관 열겁니다. 그래서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제2의 나’를 찾아 세상과 맞서 싸우게 할 생각입니다. 제가 관장을 맡으면 주먹도 잘 가르치고 인생살이도 잘 조언해주고, 왠지 잘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글: 박승혁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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