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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ogether

수산물 스티로폼 포장박스 달인, 권태화

24년 전, 26살의 건설학도는 취업을 걱정하지 않았다. 대신 평생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일단 주변에서 인정받는 것이 순서라고 판단한 그는, 취업을 간절히 원하는 부모님의 뜻대로 직장부터 찾았다. 대학시절 열심히 공부한 터라 직장 구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취업에 성공하자마자, 그는 사람들과 열심히 부딪히며 그들이 가진 다양한 세상정보를 섭렵해갔다. 신문 등 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연결시키며 미래를 준비했다.

 

 

 

 

직장생활 2년 만에 그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바로 수산물 포장재인 스티로폼 상자 제작. 1980년대 후반만 해도 모든 수산물이 나무상자에 포장돼 운송됐다. 당연히 생선의 신선도가 떨어지는 일이 많아 판매상들이 좋은 물건을 사고도 팔 때 제값을 못 받는 일이 허다했다. 그는 이를 눈 여겨 보고, 관련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권태화(50)씨는 1990년 대한민국 최초로 수산물 포장재를 스티로폼으로 만들어 전국에 유통시켰다. 당연히 특허등록을 해야 했지만, 그는 좋은 것이면 다른 사람들도 동참해야지라며, 되레 일을 배우러 오는 이들에게 도움을 줬다.

 

그의 스티로폼 포장재는 생산과 동시에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포장재는 나무상자보다 다소 비쌌지만, 수산물을 신선하게 옮길 수 있어 그에 따른 가격을 넉넉하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어획고가 늘면 공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려야 한다. 스티로폼 상자를 만드는데 있어 가장 힘든 것은 수요예측이 어렵다는 점이다. 어획량 자체가 바다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계획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는 계획생산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번 시도했다가 크게 낭패 본 일이 있다. 지난 2010년 송이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 송이상자 부족으로 고생한 경험을 살려, 지난해에는 송이상자를 미리 제작해 놓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송이가 거의 나지 않아 큰 손해를 입었다. 지금도 공장 한켠에는 지난해 수요예측 실패로 만들어진 송이상자가 한 가득이다. “‘수요예측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20년 넘게 지켜왔는데, 지난해 단 한번 어겼다가 탈이 났다올해 송이생산량이 많아지면 이놈(박스)들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공장은 영덕군 읍내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사람들이 부동산 시세차익을 고려해 경산 등에서 공장 터를 닦으라고 했지만, 그는 고향땅에서 고향을 위해 일하고 싶다며 영덕을 고집했다. 사실 그와 비슷하게 경산에서 터를 잡고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은 부동산만으로도 수 십억원은 벌었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는 다 친구 복이지, 나는 일할 곳이 있고, 이곳을 통해 직원들이 가정을 꾸리고 있어 행복하다며 사람좋은 웃음을 지을 뿐이다. “욕심 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며 살고 싶다는 그의 청년 소망이 중년이 된 오늘에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니, 넉넉한 성품이 타고난 천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품이 좋다보니, 주변에 사람들도 참 많다. 마침 그를 만난 날이 주말이라 공장문은 닫혔지만, 사무실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주변사람들은 이곳을 사랑방이라 불렀다.

 

조상준(50·공무원)씨는 이곳에 오면 항상 사람들이 즐거운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기분이 울적할 때도 이곳에서 친구들과 웃음꽃을 피우다보면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마음이 풀린다고 말했다. 그와의 대화가 이어지는 2시간동안, 족히 10명은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 좋은 사람을, 왜 이제야 세상에 소개하느냐. 이 사람 돈 많이 벌게 해달라며 응원했다.

 

한때 30명이 넘는 직원들이 공장에서 일할 정도로 성업했지만, 최근들어 기계자동화와 험한 일을 하기 싫어하는 분위기를 타고 직원이 6명으로 크게 줄었다.

직원이 자꾸 줄다보니, 그의 유일한 고민은 기술자 구하기. 이곳에서는 수산물을 담는 여러 종류(20가지 이상)의 박스와 바다에 띄우는 부표 등을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기술력이 요구되는 박스제작 금형기계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그는 금형기계 다루는 기술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지만, 이를 배우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 힘든 일을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자신만의 기술 하나만 있어도, 평생을 든든하게 살 수 있는데 말이죠

 

그는 분명 자신의 꿈을 닮은 또 다른 청년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으며, 즐겁게 일터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글 : 박승혁/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