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막대기를 잡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
늙은 길은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은 막대기로 치려고 하였더니
백발이 제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고려 말의 학자 우탁이 세월의 덧없음을 노래한 시 구절입니다.
한해를 풀어 놓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늦가을로 접어들다니, 딱히 해 놓은 것도 없는데 세월만 쏜살같이 달리고 있습니다.
시계바늘이 천천히 돌아가는 곳이 없을까요? 가쁜 호흡을 멈추고 잠시 생각이라도 정리할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월도 쉬어가는 ‘느림의 보물섬’ 신안군 증도를 찾아가 봐요.
섬에도 명함이 있다면? 증도는 어떤 섬일까요? 섬 앞에 붙는 수식어만 봐도 짐작할 수 있을 텐데요.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갯벌도립공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국가습지 보호지역, 람사르 등록습지….
담배연기 없는 섬,
깜깜한 밤 별 헤는 섬,
자전거의 섬
이렇듯 증도는 거꾸로 후진과 느린 속도를 원동력으로 진화해 가고 있는 섬이랍니다. 바람의 변화도 더디답니다. 누구나 이 섬에 발을 디디면 조급함은 모두 버리고 느긋해질 수 있습니다.
증도의 시계 바늘은 가을과 겨울에 더 천천히 돕니다. 바닷바람이 차가워지면 짱뚱어와 농게가 갯벌 깊숙한 곳에서 동면을 하고, 사냥을 포기한 갈매기도 아예 날개를 접은 채 김 양식장 말뚝에 앉아 깊은 명상에 잠긴다고 하네요. 지난 2007년 12월 증도는 아시아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되었습니다.
증도는 낮고 평평하며 산은 왕릉처럼 나직하고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합니다. 그러니 초행길의 여행자에게도 제 고향처럼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누구든 섬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바쁜 속도와 일상의 번잡함을 저절로 내려놓게 됩니다. 천천히 살아가는 법을 엿보기 위해 지금 당장 증도로 떠나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태평염전
우전해수욕장
태평염전 사이를 지나 한참 가다보면 우전리에 위치한 우전해수욕장이 보입니다. 백사장의 길이는 4km, 폭은 100m로 90여개의 무인도들이 점점이 떠있는 수평선이 매우 아름다운 해수욕장입니다. 늦가을 철지난 바다이지만 파라솔 아래 앉아 멀리 밀려 나간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마치 ‘남국의 바다’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노두길
해당화가 많이 핀다는 화도는 드라마 <고맙습니다>를 촬영했던 곳입니다. 화도와 증도 사이를 왕래하려면 갯벌 위에 놓인 ‘노두’를 반드시 지나야 하는데요, 증도에서 1.2㎞ 떨어진 화도는 섬과 섬을 연결하는 노두(露頭)를 지나야 하는데, 노두? 처음 들어 보시죠? 노두는 갯벌 위에 돌을 놓아 건너다니던 일종의 징검다리로 물이 차면 사라지고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내는 바닷길입니다. 지금은 자동차도 달릴 수 있도록 시멘트 포장을 해 자전거 도로로도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노두의 양쪽에는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어 장관입니다.
짱뚱어 다리
한반도 해송 숲
한반도 형상의 명품 숲입니다. 모실길을 따라 덕정마을과 장고마을을 지나면 우전해수욕장 백사장을 따라 10만 그루의 해송이 빼곡히 들어찬 ‘한반도 해송 숲’이 다가오는데요, 숲 전체 모양이 한반도 형상을 한 이 숲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인 공존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엘도라도 리조트
우전해수욕장 인근 엘도라도 리조트는 별장형 고급 휴양시설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리아스식 해안에 해수찜, 노천탕, 전통 불한증막, 한식당, 해양레포츠시설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는데요. 유럽풍 건축양식으로 지어졌고, 모든 객실에서 바다가 잘 보여 참 좋습니다. (전화번호: 061-260-3300).
증도의 이색체험- 걷거나 혹은 두 바퀴로 달리거나
증도에서 이동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다녀도 말릴 사람은 없지만 모처럼 슬로시티 증도에 입도했으니 한 호흡 늦춰 자전거를 이용해 볼 것을 권합니다. 바퀴 구르는 대로 해안과 갯벌을 달리거나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걷는 것도 증도에서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
걷기
섬의 해안을 따라 모두 42㎞나 되는 명품 걷기코스 ‘모실길’을 걸어보세요. 전체 5개 코스로 구분되어 있으나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해송숲 나무 사이로 바다를 보며 걷는 모실길 3코스입니다. 우전리에서 갯벌생태관을 거쳐 갯벌 위에 놓은 짱뚱어다리까지 4.6㎞를 걷는 이 코스의 숲길에는 잔모래 위로 소나무 잎이 깔려 마치 스펀지를 밟는 것처럼 폭신합니다.
자전거타기
자전거는 섬 곳곳에 마련된 대여점에서 빌릴 수 있습니다. 둥글게 바퀴를 돌리며 모실길 코스를 따라 달려도 좋고, 내키는 대로 바다를 향해 페달을 저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어디를 다니든 해질 무렵이 되면 태평염전 쪽으로 핸들을 꺾어서 오세요. 온통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풍경 속에서 염전과 소금창고를 따라 달리는 맛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멋지답니다.
가는 길 하지만 이왕 바쁜 일상을 접고 슬로시티로 떠나기로 작정했으니 느긋하게 마음먹고 떠나요. 승용차로 출발한다면, 광양에서는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동림IC-빛고을로-무안(국제공항)고속도로-북무안IC-현경-지도-증도로 가면 됩니다. 묵을 곳 |
글·사진: 우성희 / 자유기고가
'Cul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테일의 힘 (0) | 2011.11.07 |
---|---|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2) | 2011.11.04 |
아주 괜찮은 맛집, 이동간받이 (3) | 2011.10.18 |
배병우전 (0) | 2011.10.11 |
앙상블 ‘디토’ (2) | 2011.10.10 |